나는 1학년 담임입니다 책에서 한구절

나는 1학년 담임입니다 / 송주현 / 낮은산

예전에 인터넷에서 인상적으로 봤던 글이 있다. (링크)
https://blog.naver.com/songjh03/220689216883


초등학교 선생님이 쓰는 블로그인데 책을 내신게 있어서 찾아보았다. 이 책은 작은 초등학교의 1학년 담임으로서의 일상을 담은 책인데 1학년이 8명뿐인 학교이다. 일반적인 학교와는 좀 다른 점도 많겠지만 책을 읽으며 학생과 부모, 선생님 간의 일들에 대해 좀더 여러가지 관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학생으로서의 관점만 가지고 있었으니까 ㅎㅎ

1학년 담임선생님으로서 학교생활과 관련된 팁도 중간중간 들어있다. 하지만 모든 선생님들이 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지 은근 걱정되기도 한다.



85-이렇게 단정하고 모범적인 일기의 이면에는 부모의 욕망이 숨어 있다. 자기 생각을 가지런하고 말끔하게 표현하는 것. 정작 부모 자신도 잘 못 하면서 아이들에게 그런 것들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런 일기가 좋은 일기인지 난 잘 모르겠다. 이런 아이들의 일기엔 아이 삶의 개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자기 삶을 기록하는 방법을 스스로 체득하지 못하고 배워서 알게 된 아이는 테크닉은 뛰어날지 몰라도 자기 언어를 갖는 데 실패한다. 이런 일기는 자신의 시점이 아닌 타인의 시점, 혹은 객관적인 시점으로 기록된다. 사실만을 기록하는 실록처럼 평이하고 건조하다. 이런 일기엔 아이 자신만의 감정도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즐거웠다, 맛있었다, 다음에 또 하고 싶다 등의 상투적인 표현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당연히 일기 쓰는 시간이 아이를 깊은 내면으로 안내하지 못한다. 이렇게 일기 쓰기를 시작한 아이는 학년이 올라가 본격적인 글쓰기를 하게 되어도 자신의 내면과 겉도는 글을 쓰기 쉽다. 이런 일기는 안 쓰느니만 못하다.



170-초등학생만 되어도 아이들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옷은 입지 않는다. 그 옷이 더 비싸거나 좋은 것이라도 그렇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가 입은 옷이 다른 아이들의 시선에 어떻게 비칠지를 먼저 생각해서다.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일은 사실 위험한 도전이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기 떄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색깔을 숨기고 대중이 원하는 보편의 코드에 적당히 편승하려 한다. 유행에 지나치게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으면서 아주 작은 것에서 개성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을 '조금만 다른' 아이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보편의 범위에서 너무 멀리 나가는 것을 스스로 감당해 내지 못해서다. 놀라움, 시기, 질투, 조롱 등의 반응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185-아이들의 사회는 의외로 매우 냉정하다.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바로 상대에게 공격을 받는다. 그 공격을 방어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운다. 그 틈에서 살아남으려면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자기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체득한 논리와 언어를 총동원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아이들은 공부 시간에는 배울 수 없는 관계 맺기와 처세의 요령, 사회성을 갖춰 나간다.


220-"내가 라바에서 봤는데 날치가 엄청 멀리 날아."
아이들이 일제히 그 아이를 본다.
"라바? 헐, 아직도 라바라니, 쩐다. 넌 애기냐, 라바를 보게."
순간 당황한 아이가 바로 변명을 한다.
"아, 아니, 내가 애기 때 봤다니깐. 지금 본 게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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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보고 엄청 웃었다


221-내가 아이들의 논쟁에 개입해 쉽게 결판을 내 버리면 아이들은 자신의 주장을 상대에게 설득하는 배움의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교실이 아수라장이 되더라도 아이들이 다른 생각과 부딪치고 겨루는 일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생각에 살을 붙여 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222-이들 중 어떤 아이는 벌써 상대 화법의 핵심을 읽어 내기도 한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미리 예상해서 말을 고르는 수준에 도달한 아이도 있다. 형제들과 논쟁해 본 경험이 많은 아이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형제가 없는 아이들이 반대인 경우에 비해 불리하다. 형제가 없는 아이들은 엄마를 상대로 논쟁을 할 수밖에 없는데, 못 이기는 척 져 주는 엄마와 인정사정없이 공격해 오는 형제와의 논쟁은 차원이 다르다.


287-여러 아이들을 교실에 모아 놓고 북새통 속에서 지내다 보면 교사가 누구에게 어떤 행동이나 말로 상처를 줬는지 일일이 기억하기가 어렵다. 설사 기억을 한다 해도 다 아이들 잘 가르쳐 보려다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선생 생각일 뿐이고, 아이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중략)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때려 울렸는데, 그게 예전에 그 아이 때문에 화났던 일이 쌓여 벌어진 일이라면 판결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서로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고 주장하거나 기억이 안 난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교사는 과거보다는 앞으로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려 주며 앞으로는 잘 지내라고 다독이기 마련인데, 문제는 이런 조정을 어느 쪽 아이든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공정하게 바라보고 각 아이의 입장을 헤아리려 해도 교사가 신이 아닌 이상 아이들의 갈등을 옷 수선하듯 말끔하게 해결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잘못했든 아니든 교사가 자기 편을 들어 주지 않는 이상 교사의 판정에 불만을 갖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상처가 쌓이는 건 물론이다.

(중략)

그런 점에서 '새똥 차'같은 사건은 유용하다. 선생님의 실수를 핑계로 그동안 참았던 불만을 마음껏 토해 내고 풀 수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이런 사건은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 아이가 공들여 쌓아 놓은 블록 탑을 실수인 척하며 쓰러뜨리고 욕을 먹어도 되고, 아이가 쓴 받아쓰기 정답을 일부러 틀렸다고 표시한 뒤 항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면 아이는 선생의 실수를 지적하고 따지면서 예전에 자기가 서운했던 것들까지 함께 말할 기회를 얻는다.

덧글

  • 로그온티어 2017/11/15 12:39 # 답글

    읽다보니 묘하게 골을 때리는 구간이 많네요. 저는 초등학교 지낸 게 그냥저냥 보내서리 초등학생 생활에 뭐 쓸게 있나 싶었는데, 다시 보니 심오한 구석이 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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